C&MA에서 파송한 개신교 선교사가 캄보디아에 입국한 1923년 1월 이후, 캄보디아의 영적 흐름은 비록 더딘 것처럼 보였지만 신중하고도 중요한 사역으로 이어졌다. 매 주일 정기적인 예배에 이은 첫 세례, 여러 기도처에 이은 교회 설립 그리고 누가복음과 사도행전 등의 쪽 복음을 시작으로 한 성경 번역 사역이었다. 이와 함께, 교회 지도자를 양성하는 신학교 사역 역시, 한 나라의 복음화를 이루어가는 중차대한 사역인데, 캄보디아에는 1925년 9월, 바탐방의 데이빗 엘리슨(David. W. Ellison) 선교사 선교 베이스에서 첫 신학교가 세워졌다.

그에 앞선 1924년, 베트남 다낭(Danang, 당시 지명은 Tourane)에서 가진 C&MA 연례 선교사 모임에서 당시 인도차이나 지역의 책임자였던 제프리(R. A. Jaffery) 선교사는 성경학교를 통해 양성되는 현지인 사역자들이 복음 전도와 교회 사역의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확신을 했으며, 베트남에서 1911년, 첫 선교사 입국 후 1918년, 다낭에서 성경학교를 시작한 것처럼, 캄보디아에도 이를 적용한 것이다.


▲ 1925년 9월에 개교한 바탐방 성경학교

바탐방에서 개교한 성경학교는 첫해에 다섯 명의 학생이 입학하였는데, 대부분이 베트남 메콩델타의 캄푸찌어 끄라옴에서 온 학생들이었다. 개교 후 두 주 만에 두 명의 학생이 공부를 중단하였는데, 한 명은 가족의 반대로 그리고 또 한 명은 죄의 유혹에 넘어가고 말았다. 성경학교의 주 교재인 캄보디아어 성경은 누가복음이 유일했으며, 학교 건물은 엘리슨 선교사의 사택과 같은 건물 안에 있었고, 모두 기숙사 생활을 하였다.

성경학교 초기의 커리큘럼은 성경의 기본 교리, 누가복음, 그리스도의 생애, 구약 역사, 선지자와 선지서, 복음 메시지, 성경 지리, 음악 등이었다. 당시의 학사 일정은, 12개월(1년) 동안, 순회 사역과 함께, 가정 교회를 돌보며 심방을 겸하였고, 순회 사역 시에는 전도지를 중심으로 복음을 전하였다.

1926년 9월에는 12명의 학생이 입학하였으며, 1928년에는 신학교 운영에 첫 어려움을 맞았다. 즉 바탐방의 프랑스 식민정부의 지방 관리가 엘리슨 선교사에게 무허가 운영 및 학교의 교육 내용이 비밀스럽고 위험하다는 비판과 함께, 모든 사역의 중단과 함께 추방까지 경고하였다. 그러나 엘리슨 선교사는 개교 시, 지방 정부의 책임 관리자로부터 받은 허가 내용을 전달하면서 그 위기를 벗어났다.

다만 이 일로 인해 학사 일정이 연 2회의 집중 과정으로 변경되었는데(1회 집중 과정은 6주간), 오히려 이 학사 일정은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하는 캄보디아인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었다. 즉 농번기 대신 농한기에 집중 과정으로 공부하게 되었는데, 이로 인해 학생 수의 증가와 함께 학비를 낼 수 있는 여건이 훨씬 더 가능하게 되었다. 나아가, 지 교회 평신도 지도자들이 집중 과정에 참여하여 평신도 설교자가 될 수 있었다. 성경학교는 개교한 지 10년 만에 당시 캄보디아 14개 도(Province)중에 11개 도에 이 성경학교 출신의 지도자들이 사역하는 열매를 거두게 된다./장완익 선교사 (캄보디아교회사연구원장)


▲ 성경학교 수업 중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