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사 이야기] 제17화 EFC 설립과 새천년 전도 집회

1989년, 베트남 군대가 10년 만에 캄보디아에서 철수하면서 캄보디아에는 새로운 시대를 요구하는 바람이 불기 시작하였으며, 이는 곧이어 UN이 중재하는 평화협정으로 이어졌다. 당시 캄보디아에서 정치적 영향을 미쳤던 각 정파 대표들은 여러 번의 시도 끝에 1991년 10월 23일, 프랑스 파리에서 12인의 국가최고평의회(SNC: Supreme National Council)를 구성(의장: 시아누크, 부의장: 훈센)하고, 1993년의 첫 총선을 위해 1991년 11월부터 활동할 캄보디아잠정행정기구(UNTAC: United Nations Transitional Authority in Cambodia) 구성을 결정하였다. 이로 인해 캄보디아는 만 20년 이상의 내전을 종식하면서 새로운 시대에 접어들었지만, UN군 주둔 이래 후천성면역결핍증(AIDS: Acquired Immune Deficiency Syndrome) 등, 그 전에는 없었던 여러 사회문제가 발생하기도 하였다. 1993년 9월, 새로운 헌법 아래 첫 총선이 치러졌으며, 이로써 입헌군주국인 현재의 ‘캄보디아 왕국(Kingdom of Cambodia)’이 세워졌다.


▲ EFC 설립(1996년 1월)

캄보디아 개신교회는 이러한 정치적인 변동과 혼란 속에서 앞날을 예측하기 어려웠다. 바뀌는 정권마다 불교를 변함없는 캄보디아의 국교(國敎)로 인정하였고, 현재의 정권 역시 불교는 캄보디아의 국교라고 헌법에 명시하였다. 새로운 정권을 맞이한 캄보디아 개신교회는, 비록 불교가 캄보디아의 전통적인 종교이자 캄보디아인 대다수가 신봉함에도 불구하고, 종교의 자유 및 정교 분리의 원칙을 내세워 캄보디아 개신교회에 대한 법적인 허가를 요청하였다. 이에 캄보디아 정부에서는 1995년 12월, 캄보디아 개신교회를 허가하였고, 이 허가에 의해 1996년 1월, 프놈펜에서 EFC(Evangelical Fellowship of Cambodia)가 설립되었다.

이는 캄보디아 개신교회(교단)와 선교단체 중의 75% 이상 회원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매해 총회를 가지면서 캄보디아 개신교회의 대정부 창구 역할을 충실하게 감당하고 있다. 그 외에도 종교부를 통한 교회허가서 발급 업무를 담당하며, EFC에 소속된 교단이나 선교단체의 멤버 중, 외국인 선교사의 비자 신청에 필요한 서류를 발급하고 있다.

1993년에 입국한 송진섭 선교사는 1999년 2월, 캄보디아감리교신학교(MTS: Methodist Theological Seminary) 졸업생 17명과 함께, 캄보디아감리교회(MCC: Methodist Church of Cambodia)를 조직하였는데, 이는 한국 감리교회를 비롯한 4개국 감리교회 연합 사역으로, 향후 한인 선교사들의 교단 연합 사역 모델이자 발판이 되었다.


▲ 새천년 전도 집회(1999년 12월)

EFC 설립 이후, 1900년대를 보내고 2000년대를 맞이하는 캄보디아 개신교회는 1999년 성탄을 앞둔 12월 1~2일, 프놈펜 공설운동장에서 대규모 전도 집회를 가졌으며, 이는 ‘새천년 전도 집회(New Millenium Celebration)’로 명명되었다. 이는 캄보디아 교회 역사 상, 가장 많은 수가 모인 집회이며, 수많은 이들이 새 생명의 주(主)인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계기가 되었다. 다만 대형 전도 집회를 치르기 위해 필요한 재정 조달과 집행 과정 중, 각 교단과 선교단체 간 대표들 사이에 나름대로의 오해와 불신이 발생되었으며, 이는 향후의 협력과 연합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 되었다./장완익 선교사 (캄보디아교회사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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