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사 이야기] 제16화 1990년대 초, 캄보디아 교회 재건을 위한 노력

1990년대의 캄보디아 교회는 크게 캄보디아 안에서, 소위 지하 교회 또는 가정 교회 형태로 모임을 유지하던 그룹과 난민캠프 또는 외국에서 귀환한, 소위 외부에서 들어온 두세 그룹이 만나면서 캄보디아 교회를 재건하던 때로, 당시 대표적인 교계 지도자들은 다음과 같다.

– 캄보디아 지하 교회 지도자들: 용솟, 헹쳉, 살폴레악, 웅리언, 몰리요스, 시응앙, 임촌 등

– 난민캠프에서 송환된 지도자들: 맘바나바, 우온셀라, 브롬삼보, 메스타비, 민솔, 레이사노 등

– 외국에서 돌아온 지도자들: 아룬속넵, 콩촌, 시탄리, 라다마니캄, 웅띠, 땅벡후엉, 삼은인탈


▲ 싱가포르에서 열린 CCS 모임(1990년)

1990년, 캄보디아에서 사역하는 시니어 외국인 선교사들과 캄보디아인 교계 지도자들은 캄보디아 개신교의 연합을 위해 CCS (Cambodia Christian Services)라는 일종의 선교연합회를 만들었는데, 이에는 캄보디아 개신교회는 물론 선교단체와 구호단체까지 참여하였다. 물론 이 단체는 캄보디아 정부에서 인정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설립 이후, 여러 가지 대내외적인 이유로 인해 지도자들 간에 갈등과 분열이 시작되면서 그 역할은 약해져 갔다.

1992년, 프놈펜성경학교 (Phnompenh Bible School, 후에 Phnompenh Bible Institute로 개명)가 학생 30명으로 시탄 리 (Sitan Lee)와 라다 마니캄(Radha Manickam) 그리고 다니엘 램 (Daniel Lam, 홍콩인 선교사, 초대 학장)에 의해 시작되었다. 이는 C&MA에서 1925년에 개교한 바탐봉성경학교 그리고 1948년에 이전한 따크마으성경학교의 전통을 잇는 목회자 양성 기관이라는 차원에서 의미가 크다. 물론 C&MA에서는 이러한 정규 성경학교 외에도 신학연장교육 (TEE: Theological Education by Extension)이라는 비정규 과정을 통해 많은 목회자를 양성하였으며, 이는 캄보디아의 문화와 현실에 상당히 부합하고 있다.

1993년 1월 1일은 캄보디아에 첫 한국인 선교사 가정이 입국한 날이다. 이때를 시작으로 캄보디아에는 많은 한국인 선교사가 입국하게 되는데, 이는 별도의 장(場)으로 다루도록 한다.

한 통계에 의하면, 1993년 말 기준으로 캄보디아에는 150여 교회와 10,000명이 넘는 기독교인들이 있었다. 이후에도 교회와 교인들의 숫자는 지속적으로 늘어나는데, 동시에 외국의 개신교 교단과 선교단체들의 급속적인 증가와 함께, 캄보디아인 교회 지도자들 간의 불신과 불화가 커지면서 캄보디아 개신교계는 분열되기 시작하였다.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외국의 개신교단과 선교단체들의 무분별하고도 경쟁적인 활동도 그 원인 중의 하나였다.

그중에서도 1994년, 미국인 전도자 마이크 에반스 (Mike Evans)의 대형 전도집회는 캄보디아 현대교회사에 치부로 불릴 만하다. 캄보디아인 교계 지도자들과 선교사들의 경고와 조언을 무시한 채, 엄청난 재정과 홍보를 통해 이틀 동안 올림픽 스타디움에 70,000명 이상을 모았는데, 이들은 온갖 병을 치유 받을 수 있다는 약속을 따라 캄보디아 전국에서 몰려든 것이다. 그러나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실망한 군중들에 의해 집회는 난장판이 되었다. 결국, 마이크 에반스는 경찰의 호송을 받아 비상 출국을 하였다. 이는 기독교의 위상을 떨어뜨리고, 교회의 핍박을 초래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장완익 선교사 (캄보디아교회사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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